< 김일성이 이후락을 만나 제안했던 사업들은? >
어제(6일) 통일부가 6일 1970년대 남북회담 문서 1천700쪽 분량을 ‘남북대화 사료집’으로 공개했는데요. 김일성 주석과 이후락 정보부장은 총 4회(김일성 주최 오찬 1회 포함), 박정희 대통령과 박성철 제2부수상은 1회 면담한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김일성과 이후락 면담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후락이 다른 남북회담에서 언급한 김일성 발언은 일부 간접적으로 확인됩니다. 이후락에 따르면, 김일성은 1968년 청와대 기습 1.21사태에 대해 ”좌경 맹동분자들의 책동“이라 했고 사과성 발언을 했다고 하는데요. 이는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이죠.
“다시는 6·25와 같은 전쟁은 없을 터이니까 그렇게 박 대통령에게 전하시오”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후락이 1972년 11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이 ‘명태잡이 공동조업’ 등 다양한 경제협력 사업도 언급된 것으로 보인다고 하는데요. 명태잡이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우리가 힘을 합쳐 사업을 개발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문제” 등이 있었다는 겁니다.
이번 통일부에서 공개하지 않은 김일성-이후락 면담 중 김일성의 경제사업 제안 내용은 이미 북한에서 발행한 재미교포 최덕신과 한 담화(주체67(1984)년 10월 28일)(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2000)에 그 내용이 상세히 나와 있는데요. 김일성이 당시 이후락에게 ‘북남경제합작’을 제안한 부분을 최덕신에게 전한 부분입니다.
김일성은 남한이 제기한 북남경제회담을 간부들이 반대할 때 자신이 응하라고 했다면서 1972년 7.4공동성명을 위해 찾은 남한 대표들에게 이미 세 가지 북남경제합작과 교류를 제기했다는 내용을 세세하게 밝혔습니다. 핵심은 ‘철광석 등 북한에 풍부한 지하자원을 북이 설비를 대고 남이 노력(노동력)을 대서 남과 북이 공동으로 개발하자’, ‘동해안 수산물을 잡아가라’, ‘관개수로 공사를 해주겠다’는 내용입니다.
통일부에서 공개한 김일성 간접 발언은 ‘명태잡이’로 나오지만 김일성은 ‘동해안 수산물을 잡아가라’고 폭넓게 제안한 겁니다. 북한체제에 대한 우월감, 남북교류협력에 대한 김일성의 생각 단편을 엿볼 수 있는 것이 북남경제합작 제안입니다. 2천년대 교류협력과는 정반대 입장이죠.
1972년에는 북측에서 남측에 관계수로 공사를 해주겠다고 했다면 2천년대는 남측에서 북측에 식량과 비료를 지원했죠. 2천년대는 남쪽에서 자본과 기계를 대고 북쪽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방식의 경제협력이 대부분이었다면, 1972년 김일성 제안은 남쪽이 노동력을 제공하라는 내용입니다.
1972년 남북회담 당시 박정희는 남북 경제력 비교 연구를 지시했고, 대략 남쪽이 북쪽과 비슷하다는 보고를 받고 남북회담에 임했다고 하는데요. 아무래도 체제경쟁에서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에 북측의 경제합작 제안을 수용할 수 없었겠죠. 미 중앙정보부는 1976년 이후 남한이 북한을 따라잡았다고 분석했다고 합니다.
북측 또한 2천년대 남북경제협력에 대해 부담감이 엄청났겠죠. 경제협력은 아무리 내부 통제를 해도 체제경쟁의 현실을 고스란히 인민들에게 노출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니까요. 특히 개성공단은 동서독과 전혀 다른, 남북한만의 독특한 경제협력이자 평화통일의 마중물이었습니다. 개성공단을 폐쇄한 2016년 박근혜 정부의 무원칙, 2018년-2019년 정세에서도 개성공단 재개에 실패한 문재인 정부의 우유부단함이 너무너무 아쉬움으로 남는 시대입니다.
과연 남북교류협력, 경제협력은 북한만을 도와주고 핵과 미사일 고도화를 방치하는 걸까요? 아니면 남북이 서로 이익을 보며 북한을 변화시키는 촉매이며 통일 기반을 조성하는 수단일까요?

< 김일성이 이후락을 만나 제안했던 사업들은? >
어제(6일) 통일부가 6일 1970년대 남북회담 문서 1천700쪽 분량을 ‘남북대화 사료집’으로 공개했는데요. 김일성 주석과 이후락 정보부장은 총 4회(김일성 주최 오찬 1회 포함), 박정희 대통령과 박성철 제2부수상은 1회 면담한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김일성과 이후락 면담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후락이 다른 남북회담에서 언급한 김일성 발언은 일부 간접적으로 확인됩니다. 이후락에 따르면, 김일성은 1968년 청와대 기습 1.21사태에 대해 ”좌경 맹동분자들의 책동“이라 했고 사과성 발언을 했다고 하는데요. 이는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이죠.
“다시는 6·25와 같은 전쟁은 없을 터이니까 그렇게 박 대통령에게 전하시오”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후락이 1972년 11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이 ‘명태잡이 공동조업’ 등 다양한 경제협력 사업도 언급된 것으로 보인다고 하는데요. 명태잡이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우리가 힘을 합쳐 사업을 개발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문제” 등이 있었다는 겁니다.
이번 통일부에서 공개하지 않은 김일성-이후락 면담 중 김일성의 경제사업 제안 내용은 이미 북한에서 발행한 재미교포 최덕신과 한 담화(주체67(1984)년 10월 28일)(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2000)에 그 내용이 상세히 나와 있는데요. 김일성이 당시 이후락에게 ‘북남경제합작’을 제안한 부분을 최덕신에게 전한 부분입니다.
김일성은 남한이 제기한 북남경제회담을 간부들이 반대할 때 자신이 응하라고 했다면서 1972년 7.4공동성명을 위해 찾은 남한 대표들에게 이미 세 가지 북남경제합작과 교류를 제기했다는 내용을 세세하게 밝혔습니다. 핵심은 ‘철광석 등 북한에 풍부한 지하자원을 북이 설비를 대고 남이 노력(노동력)을 대서 남과 북이 공동으로 개발하자’, ‘동해안 수산물을 잡아가라’, ‘관개수로 공사를 해주겠다’는 내용입니다.
통일부에서 공개한 김일성 간접 발언은 ‘명태잡이’로 나오지만 김일성은 ‘동해안 수산물을 잡아가라’고 폭넓게 제안한 겁니다. 북한체제에 대한 우월감, 남북교류협력에 대한 김일성의 생각 단편을 엿볼 수 있는 것이 북남경제합작 제안입니다. 2천년대 교류협력과는 정반대 입장이죠.
1972년에는 북측에서 남측에 관계수로 공사를 해주겠다고 했다면 2천년대는 남측에서 북측에 식량과 비료를 지원했죠. 2천년대는 남쪽에서 자본과 기계를 대고 북쪽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방식의 경제협력이 대부분이었다면, 1972년 김일성 제안은 남쪽이 노동력을 제공하라는 내용입니다.
1972년 남북회담 당시 박정희는 남북 경제력 비교 연구를 지시했고, 대략 남쪽이 북쪽과 비슷하다는 보고를 받고 남북회담에 임했다고 하는데요. 아무래도 체제경쟁에서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에 북측의 경제합작 제안을 수용할 수 없었겠죠. 미 중앙정보부는 1976년 이후 남한이 북한을 따라잡았다고 분석했다고 합니다.
북측 또한 2천년대 남북경제협력에 대해 부담감이 엄청났겠죠. 경제협력은 아무리 내부 통제를 해도 체제경쟁의 현실을 고스란히 인민들에게 노출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니까요. 특히 개성공단은 동서독과 전혀 다른, 남북한만의 독특한 경제협력이자 평화통일의 마중물이었습니다. 개성공단을 폐쇄한 2016년 박근혜 정부의 무원칙, 2018년-2019년 정세에서도 개성공단 재개에 실패한 문재인 정부의 우유부단함이 너무너무 아쉬움으로 남는 시대입니다.
과연 남북교류협력, 경제협력은 북한만을 도와주고 핵과 미사일 고도화를 방치하는 걸까요? 아니면 남북이 서로 이익을 보며 북한을 변화시키는 촉매이며 통일 기반을 조성하는 수단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