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방안은 통일을 가로막는다?
1. 오늘은 ‘6.15남북공동선언’ 22주년입니다. 개인은 역사적 사건을 그날의 소소한 일상과 함께 기억하기도 하는데요. 당시에 무슨 일을 하면서 6.15공동선언 발표를 들으셨나요? 또는 당시 제일 인상 깊었던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2. 지금도 생생한 기억은 외국 신문에 실린 관련 기사 중 사건을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삽입한 그림 설명입니다. 분단선이 표시된 한반도 지도 아래 위 남북한 지역에 말풍선을 달아, 미국과 소련이 점령한(occupied) 지역으로 표시했더군요. KOREA가 분단된 후 처음으로, 55년만이라 쓰였는지는 불명확하지만, 남북 정상이 만났다는 내용이었죠. 그만큼 큰 사건으로 비쳐진 겁니다. 우리는 지금도 ‘점령’ 당했던 사실을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죠.
3. ‘우리 민족끼리’란 말은 이후 유행이 되었는데요. 7.4공동성명 3대 통일원칙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을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에 담아낸 것이죠. 통일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서 ‘우리 민족끼리’는 알아듣기 쉬운 압축, 상징적인 표현이었습니다. 2018년 판문점선언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는데요. ‘우리 민족끼리’가 더 나은 듯합니다. 물론 주변 강국들은 찬성할 수밖에 없어도 매우 불편한 용어겠죠.
4.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는 오늘 저녁 7시 종로구 천도교대교당에서 ‘자주평화통일대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어떤 이는 남측위원회가 단군 이래 가장 많은 단체를 포괄한 연대체라고 하더군요. 이름만 올린 단체도 있겠지만 상징성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겠죠. 눈에 띄는 대목은 민주노총, 한국노총 토론회에 북한 조선직업총동맹 위원장이 3년 만에 연대사를 보내왔다는 부분입니다. 남북관계가 경색될 때는 민간단체들 역할이 더욱 높아져야겠죠.
5. 6.15공동선언의 독특성과 핵심은 통일방안에 대한 합의인데요.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많은 이들이 주목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 보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폄훼하기도 합니다. 사실 구체적이지는 않죠. 그럼에도 남북이 최초로 통일 방향과 지향점을 합의한 의의가 매우 큽니다.
6. 미국 CIA보고서는 남북한 1인당 GNP가 역전된 시점을 1976년이라고 평가했답니다. 그 전에는 북이 잘 살았고 그 이후에는 남이 추월을 시작했다는 거죠. 대략 1980년대 초반까지는 비슷했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체제경쟁에서 우월한 쪽이 남북통일방안을 제안하는 경향성이 있는데요. 어쩌면 남북이 제안한 통일방안은 상대 당국과 실질적으로 진척시키기 위한 협상안 보다는 국내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선전일 수도 있으니까요.
7. 북은 1959년 말부터 재일동포 북송사업을 시작했고 60년대부터 1단계 경제연합, 2단계 자유총선거를 상정하고 과도적 연방제를 핵심으로 여러 방안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1980년에 고려민주연방제를 공식 확정하죠.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두고 연방제로 1국가를 만든 후 외교국방 이외는 남북 자치정부를 하자는 겁니다. 김일성은 1991년 자치정부의 권한을 확대하는 ‘느슨한 연방제’를 말하기도 합니다.
8. 남은 이승만 ‘북진통일’, 박정희 ‘선건설후통일’ 등 수세적으로 일관했는데요. 전두환 때 ‘민족화합민주통일론’을 엉성하게 제시했다가 노태우 때 들어서야 체제우월성을 바탕으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내놓습니다. 이를 김영삼 정부에서 다듬어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확정했고 국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골자는 1단계 화해와 협력, 실질적인 남북교류협력입니다. 2단계가 과도적 남북연합이고 3단계가 자유민주체제 1민족 1국가죠.
9.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방향에서 북한은 60,70년대에 남북경제교류를, 남한은 90년대 이후 남북교류협력을 1단계로 상정했는데요. 체제경쟁 자신감에서 비롯된 부분이겠죠. 6.15공동선언에서는 어쨌든 남북이 다방면에서 교류협력을 하기로 했으니, 이를 바탕으로 좀 더 높은 수준인 ‘낮은 단계 연방제’와 ‘과도적 남북연합’을 지향점으로 삼았을 겁니다.
10. 6.15 공동선언 이후 20여 년 동안 남북은 더 이상 통일방안을 제시하거나 제안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남북관계가 실질적으로 진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통일방안은 무의미하고, 통일방안이 없어도 남북관계가 발전되면 자연스레 그에 걸맞는 제도와 관행을 만들어가겠죠. 그래서 우리는 평화체제와 교류협력의 실질화 등 과정으로써 통일, 남과 북이 상생하면서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상생통일을 이야기합니다.
11.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이미 30년 가까이 남한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발전적으로 보완해 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화한다’고 국정목표를 제시했답니다. ‘보완’ 내용이 통일을 더 멀게 만들지 않길 바랍니다. 통일방안 보완수정 보다는 남북 군사긴장 해소와 평화체제구축, 교류협력이 더 중요하니까요.
통일방안은 통일을 가로막는다?
1. 오늘은 ‘6.15남북공동선언’ 22주년입니다. 개인은 역사적 사건을 그날의 소소한 일상과 함께 기억하기도 하는데요. 당시에 무슨 일을 하면서 6.15공동선언 발표를 들으셨나요? 또는 당시 제일 인상 깊었던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2. 지금도 생생한 기억은 외국 신문에 실린 관련 기사 중 사건을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삽입한 그림 설명입니다. 분단선이 표시된 한반도 지도 아래 위 남북한 지역에 말풍선을 달아, 미국과 소련이 점령한(occupied) 지역으로 표시했더군요. KOREA가 분단된 후 처음으로, 55년만이라 쓰였는지는 불명확하지만, 남북 정상이 만났다는 내용이었죠. 그만큼 큰 사건으로 비쳐진 겁니다. 우리는 지금도 ‘점령’ 당했던 사실을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죠.
3. ‘우리 민족끼리’란 말은 이후 유행이 되었는데요. 7.4공동성명 3대 통일원칙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을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에 담아낸 것이죠. 통일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서 ‘우리 민족끼리’는 알아듣기 쉬운 압축, 상징적인 표현이었습니다. 2018년 판문점선언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는데요. ‘우리 민족끼리’가 더 나은 듯합니다. 물론 주변 강국들은 찬성할 수밖에 없어도 매우 불편한 용어겠죠.
4.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는 오늘 저녁 7시 종로구 천도교대교당에서 ‘자주평화통일대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어떤 이는 남측위원회가 단군 이래 가장 많은 단체를 포괄한 연대체라고 하더군요. 이름만 올린 단체도 있겠지만 상징성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겠죠. 눈에 띄는 대목은 민주노총, 한국노총 토론회에 북한 조선직업총동맹 위원장이 3년 만에 연대사를 보내왔다는 부분입니다. 남북관계가 경색될 때는 민간단체들 역할이 더욱 높아져야겠죠.
5. 6.15공동선언의 독특성과 핵심은 통일방안에 대한 합의인데요.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많은 이들이 주목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 보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폄훼하기도 합니다. 사실 구체적이지는 않죠. 그럼에도 남북이 최초로 통일 방향과 지향점을 합의한 의의가 매우 큽니다.
6. 미국 CIA보고서는 남북한 1인당 GNP가 역전된 시점을 1976년이라고 평가했답니다. 그 전에는 북이 잘 살았고 그 이후에는 남이 추월을 시작했다는 거죠. 대략 1980년대 초반까지는 비슷했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체제경쟁에서 우월한 쪽이 남북통일방안을 제안하는 경향성이 있는데요. 어쩌면 남북이 제안한 통일방안은 상대 당국과 실질적으로 진척시키기 위한 협상안 보다는 국내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선전일 수도 있으니까요.
7. 북은 1959년 말부터 재일동포 북송사업을 시작했고 60년대부터 1단계 경제연합, 2단계 자유총선거를 상정하고 과도적 연방제를 핵심으로 여러 방안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1980년에 고려민주연방제를 공식 확정하죠.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두고 연방제로 1국가를 만든 후 외교국방 이외는 남북 자치정부를 하자는 겁니다. 김일성은 1991년 자치정부의 권한을 확대하는 ‘느슨한 연방제’를 말하기도 합니다.
8. 남은 이승만 ‘북진통일’, 박정희 ‘선건설후통일’ 등 수세적으로 일관했는데요. 전두환 때 ‘민족화합민주통일론’을 엉성하게 제시했다가 노태우 때 들어서야 체제우월성을 바탕으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내놓습니다. 이를 김영삼 정부에서 다듬어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확정했고 국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골자는 1단계 화해와 협력, 실질적인 남북교류협력입니다. 2단계가 과도적 남북연합이고 3단계가 자유민주체제 1민족 1국가죠.
9.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방향에서 북한은 60,70년대에 남북경제교류를, 남한은 90년대 이후 남북교류협력을 1단계로 상정했는데요. 체제경쟁 자신감에서 비롯된 부분이겠죠. 6.15공동선언에서는 어쨌든 남북이 다방면에서 교류협력을 하기로 했으니, 이를 바탕으로 좀 더 높은 수준인 ‘낮은 단계 연방제’와 ‘과도적 남북연합’을 지향점으로 삼았을 겁니다.
10. 6.15 공동선언 이후 20여 년 동안 남북은 더 이상 통일방안을 제시하거나 제안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남북관계가 실질적으로 진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통일방안은 무의미하고, 통일방안이 없어도 남북관계가 발전되면 자연스레 그에 걸맞는 제도와 관행을 만들어가겠죠. 그래서 우리는 평화체제와 교류협력의 실질화 등 과정으로써 통일, 남과 북이 상생하면서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상생통일을 이야기합니다.
11.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이미 30년 가까이 남한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발전적으로 보완해 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화한다’고 국정목표를 제시했답니다. ‘보완’ 내용이 통일을 더 멀게 만들지 않길 바랍니다. 통일방안 보완수정 보다는 남북 군사긴장 해소와 평화체제구축, 교류협력이 더 중요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