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핵무력 법제화, 상호 ‘위협’과 ‘불안’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야 >
1. 정전(停戰) 상태인 냉엄한 현실
한미동맹군과 북한군은 현재 휴전 중이다. “국제연합군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및 중국 인민지원군을 일방으로 하는” 정전협정 상태다. 쌍방 군사령관은 정전협정 효력 발생 후 “삼개월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하여 쌍방의 한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한국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 및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1954년 제네바 회담에서 종전과 평화협정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고 더 이상 회담은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현상변경이 일어났다. 결정적으로 교전 당사국인 미중, 한중이 수교하며 적대관계를 청산했고 국제연합군은 미군으로 형식, 내용 모두 대체되었다. 지금은 한미동맹군과 북한군이 정전협정의 구속을 받고 있다.
전쟁을 끝내려면 양방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했으나 69년째 종전평화협정은 체결되지 않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어느 일방의 판단으로 언제든 전쟁이 재개될 수도 있다. 종전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인정과 대화, 전쟁 재개에 대비하는 적대와 군사력 증강이 공존하는 불안정한 상황이다. 덧붙여 자국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국내외 여론전, 심리전을 열전에 버금갈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다.
2. 미국 핵우산과 북한 핵무력이 전략적 균형을 이루는 시대
북은 지난 9월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를 법화(법제화)하였다. 같은 날 김정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먼저 핵포기란, 비핵화란 없”다면서 핵전쟁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억제수단, ‘절대병기’라고 밝혔다. 또한 미국의 제재봉쇄는 자국 발전에 대한 불확신성과 위협을 증대시켜 핵을 선택한 댓가를 생각하게 하고 인민들의 불만을 유발, 야기시켜 스스로 핵을 내려놓게 하려는 기도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북의 핵무력 법제화는 2가지 원칙과 5개 조건을 명확히 하였다. 사용원칙은 최후의 수단으로써 사용, 자국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비핵국에 대한 불사용이다. 사용조건은 자국, 지도부, 중요 전략대상이 공격받거나 공격이 임박할 경우, 전쟁 주도권 장악을 위해 작전상 불가피한 경우와 자국의 파국적인 위기 초래로 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선된 경우가 그것이다. 자의적이며 선제사용도 가능할 수 있는 조건이다. 한마디로 건들면 쏜다는 것이다.
핵보유국은 통상 전략적 기밀성, 모호성을 기본으로 전술적으로 필요한 경우에 핵 사용 원칙을 드러낸다. <러-우전쟁>에서 미국과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강력한 군사, 경제적 지원을 하면서도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지원은 제외한다. 러시아가 개전 초기부터 핵사용 가능성을 경고했기 때문이다. 간접적이라도 핵보유국 사이 전쟁은 그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
북의 핵무력 법제화처럼 세세하게 핵사용 교리(독트린)를 법제화한 나라는 아직 없다. 그렇다고 다른 핵보유국과 특별히 다를 것도 없다. 미국은 핵태세검토보고서에서 “극단적 상황 속에서 미국과 동맹, 우방의 핵심 이익을 지키는 목적”을 핵사용 원칙으로 한다. 극단적 상황과 핵심이익은 자의적일 수 있다. 극단적 상황은 적성국이 핵을 사용하지 않는 중대한 공격도 배제하지 않는다. 핵심이익은 미 본토뿐 아니라 동맹과 우방의 국민이나 기반시설, 핵전력, 지휘통제, 조기경보 또는 공격자산 역량에 대한 공격을 의미한다.
적성국 공격 위협에 대한 선제타격 가능성도 마찬가지다. 북은 상대 공격이 ‘임박한 경우’를 들었다면 한미는 ‘명백한 사용징후’를 수시로 거론하였다. 이미 미국은 90년대 중반 대북 선제타격을 검토했고 트럼프 때도 정밀타격, 족집게 타격(surgical strike)을 제기하였다. 한미연합훈련 작전계획 5015는 반격이라는 이름으로 북한 주요 군사시설에 대한 타격, 최고 지도부 참수작선을 연습한다. 남한의 킬체인 또한 선제타격 개념이다.
한미와 북은 상대 공격 가능성에 대한 ‘불안’을 전제로 선제타격을 열어놓고 서로 ‘위협’하고 있다. 북은 미국의 핵무기에 대한 불안을 핵개발의 명분으로 삼았다. 상호안보위협 인식은 서로 핵무기 사전공격 가능성이라는 최고 임계치를 향해 치닫고 있는 실정이다. 재래식 국지전이라 하더라도 북한과 미국은 자의적 판단에 따라 핵사용을 할 수 있다는 원칙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반도에서 미국과 북한의 핵전력은 전략적으로 균형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상호 사전타격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핵사용 가능성에 대한 공포의 균형, 전쟁 억지력은 발휘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북한 핵무기의 미국 본토 타격능력 여하에 따라 북미 전쟁 가능성은 좌우된다. 미국은 아직 부정하고 있으나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 공언하였다. 대기권 재진입 기술, 정밀도 등을 문제삼고 있지만 대체로 북한 핵이 미국 본토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그렇다면 북미 핵전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특성상 북미 전쟁가능성은 점차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된다.
3. 한미의 압도적이며 결정적 대응은 가능한가?
지난 17일 끝난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 회의(쉬운 말로는 핵우산적용회의)는 4년 8개월 만에 재개되었다. 회의는 북한의 어떠한 핵 공격도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에 직면하게 되리라고 경고하였다. 한미연합훈련 확대와 함께 한미동맹 강화라는 포장지로 일찌감치 선전된 회의였기에 북한 핵무력 법제화에 맞추어 문투만 강화된 정도였다. 국방부 차관이 군사기지를 방문해 B-52 핵폭격기를 구경하는 퍼포먼스를 추가했을 뿐 미국의 핵우산 정책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회의 후 외교차관은 기자간담회에서 한미는 북핵 공격에 대해 핵으로 대응한다는 원칙이라면서도, ‘자동적이고 즉각적’이냐는 질문에는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을 이유로 대답을 비껴나갔다. 당연히 한미동맹군의 전시지휘권은 미국에 있다. 국지전마저 핵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면 더욱 더 미국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미국 본토 타격 가능성 뿐 아니라 남한의 군사적 모험을 통제하는 부분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분석가들은 북한 핵무기가 워싱턴 백악관 가까이 다가갈수록 미국은 서울 보다 자국 이익과 안위를 먼저 고려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러-우전쟁>의 기시감(미리 본 듯한 느낌)처럼 핵무기를 가진 국가와 전쟁을 회피할 수도 있다고 보는 이마저 있다. 북한을 선제공격한다 하더라도 북한의 보복핵공격(2차타격) 능력이 상존하는, 상호확증파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미의 압도적이고 결정적인 대북 대응은 레토릭에 가깝다. 지난 30여년 동안 경제적 세계화시대에서 익숙하게 들었던 국제표준(글로벌스탠더드)은 이제 (미국의) 가치와 규범에 따라 재편되고 있다. ‘미국우선주의’(아메리카퍼스트)가 새로운 표준이다. 국가안보가 경제적 효율성을 압도하게 만드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북한의 위협과 공격가능성에 대한 선동과 심리전이 강화될수록 남한의 자율성은 제약되고 점점 미국주도 블록경제에 종속될 것이다.
지난 3월부터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할 것이라는 미국의 심리전이 지속되고 있다. 북한의 전술핵무기가 남한을 겨냥하고 있고 선제공격 가능성까지 높아졌다고 불안을 고조시킨다. 사실 북한 핵무기는 이미 상존하고 있었지만 윤석열 정부 이후 북한 위협은 대폭 증폭되었다. 미국은 한미연합훈련을 확대하고 시시때때로 철통같은 남한 방어공약을 환기시킨다. 그 댓가로 미국은 윤석열 정부가 거의 무조건적으로 미중패권경쟁에 따른 탈중국화 블록에 가담하게 만들고 있다. 구체적으로 미국 제조업 부활(리쇼어링)을 위한 전기차, 반도체 등에 대한 남한 자본의 투자와 통제, 배제를 추진하는 중이다. 한반도 안보위협을 통해 미국체제 이익을 구현하는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북핵에 대응한 남한의 핵개발,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유럽 같은 미국의 핵공유 등을 이야기하지만 현재 미국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이다. 일본처럼 필요하다면 단시간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인정받아 훗날을 대비하자는 주장도 있다. 이는 유엔상임이사국만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핵확산금지조약(NPT) 범위 내에 있는 요구이긴 하나 비핵화 명분, 미국과 주변국 간섭, 안전성의 문제가 있다.
결론적으로 북핵에 대한 한미의 압도적이고 결정적인 대응은 북미관계 정상화에 기반한 한반도비핵화 과정을 앞당기는 방안뿐이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나 그 길만이 가장 빠른 길이다. 현실적으로 북한 핵은 이미 한반도의 상수로 진입하였기 때문이다. 정전당사국 간에 상대의 핵을 먼저 폐기하라는 요구가 가능했던 시대,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까지 인정한 유일패권시대가 저물고 있다. 현재 기술로 원자력발전소 1기 폐쇄에만도 몇 십 년이 걸린다. 한반도비핵화는 몇 년 후 당장 실현 가능하지 않고 수십 년 동안 평화와 번영을 정착시켜나가는 과정이라는 시각이 필요할 때이다.
4. 북한 핵무력은 절대병기인가?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가 전쟁에서 패한 경우는 아직 없다. 핵무기는 아직 인류사 최강무기임은 분명하다. 미국은 1945년 8월 초 히로시마, 나카사키에 핵무기를 투하하여 일본을 항복하게 만들었다. 너무 강력한 탓에 실전 사용은 딱 한 번 뿐이었지만. 이처럼 핵무기는 비핵국가에 비해 절대적 비교우위를 갖는다. 그럼에도 핵보유국이 비핵국가와 전쟁했을 경우에 핵무기를 사용한 예는 아직 없다. 다른 핵보유국의 후견, 견제가 강력하기 때문이다. 또한 핵보유국 사이 분쟁이 전면전으로 발전한 경우도 아직 없었다. 이를 억제력이라 한다.
그러나 핵을 보유했음에도 망한 나라는 있다. 알다시피 소련이며, 스스로 붕괴되었다. 지도자의 오판, 지도부의 분열, 인민대중과 군대의 분리이거나 인민대중을 비주체적으로 만든 지배체제의 한계, 다른 국가와 비교우위 상실에 따른 인민대중의 실망감 등이 복합적으로 발현된 탓이다. 핵무기가 체제 자체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소련은 해체되었으나 자본주의로 체제가 변화된 러시아가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극심한 혼란을 겪었음에도 러시아 핵무기를 미국과 서방은 해체하지 못했다. 핵무기의 또 다른 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김정은 시정연설은 핵무력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과 함께 인민대중의 지지와 일체성을 강조하였다. 수령-당-인민대중의 일심단결은 북 체제 유지의 핵심 동력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경제적 난관을 언급하며 “급선무로 나서는 먹는 문제, 소비품 문제 등의 해결”을 강조하였다. 김정은이 절대병기로 언급하고 김여정이 국체라고 표현한 북한 핵무력은 미국 등 상대에 대해서는 절대적 위력이다. 외부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안전판을 발판으로 내부 발전을 추동하는데 힘을 모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자력갱생에서 성과를 내는 경제체제 정비보강에서 성공해야만 절대병기로써 핵무력이 기능할 것이다.
북한의 핵무력 법은 매우 공세적이다. 핵 사용에 대한 원칙과 조건을 세세하고 명확하게 밝힌 까닭은 상대의 의도를 사전 봉쇄하는 효과가 목적으로 보인다. 마치 고슴도치가 가시털을 모두 세운 형세다. 지휘통제체계가 위험에 처하는 경우에는 ‘핵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된다. 핵 사용조건은 ‘핵 및 비핵 공격’, ‘치명적인 군사적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하였다고 판단하였을 경우 뿐 아니라 ‘전쟁의 주도권 장악을 위한 작전상 필요’가 제기되는 경우에까지 확대하였다. 특히 ‘파국적인 위기가 초래하는 불가피한 상황’은 해상봉쇄 등 뿐 아니라 강력한 대북제재까지 포함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북의 핵무력 법은 다분히 수세적이며 정세대응 성격을 갖는다. 북은 김정은 집권 첫해인 2012년 개정헌법 서문에 김정일 위원장의 업적을 추가하면서 ‘핵보유국’으로 전변시켰다고 명시하였다. 2006년과 2009년, 2차례 핵시험을 마친 상태였다. 2013년 2월에 3차 핵시험을 하고 4월에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고히 할데 대한 법을 채택하였다. 미국의 적대시정책과 핵위협에 대처하여 부득이하게 갖추게 된 정당한 방위수단임을 1조에 천명하였다. 그러나 2017년 11월 말에야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였다.
북은 2018년 남북, 북미관계 개선과 한반도비핵화에 나섰고 아시다시피 미국의 과욕으로 무산되었다. 북은 2019년 말 정면돌파전을 선언하였으나 코로나대유행으로 국경을 폐쇄하였다. 문재인 정부와 갈등하면서도 친서를 주고 받았으나 북은 미중패권경쟁이 심화되자 2021년 ‘신냉전’ 시대라는 인식을 보였다. 2022년 2월 <러-우전쟁>에 이어 3월 남한에 대북선제타격을 주장하는 정부가 들어섰다. 김정은은 4월 25일 열병식에서 핵무력에 대하여 전쟁억지와 함께 근본이익이 침탈당하는 경우로써 다음 사명을 언급하였다. 핵 사용 조건을 넓힌 것이다. 그리고 8월 말에 진행한 한미연합훈련을 북침연습으로 규정하며 비난하였고 9월 8일 핵무력을 법제화하였다. 선제타격 가능성까지 명시하였다.
김정은은 시정연설에서 ‘잘못된 선택으로 비참한 말로’를 당한 20세기, 21세기 수많은 역사의 사건을 잘 알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미국의 정권붕괴 의도를 강조하며 주변의 군사적 정세가 장기성을 띠며 악화되고 있는 정세발전 추이 등, 중대한 시기에 핵무력 정책을 법(제)화하였다고 밝혔다. 중대한 시기는 ‘신냉전’으로 표현된 세계정세 변화다. 북한이 핵무기 사용에 대한 전략적 명확성을 밝힌 까닭은 미국만이 아니라 중, 러에 대한 신호일 수 있다. 반쪽이라 할지라도 실질적 핵보유국 인정을 향한 발걸음을 떼기 위한 시도 중 하나가 아닐까.
NPT체제에서 핵보유국은 유엔 안보리상임이사국 다섯 나라다. 그 외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은 실질적 핵보유국이다.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상태는 핵을 묵인하고 정치외교, 무역 등에서 제재를 가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미국 일극체계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제재에 동참하였고 아직 유엔제재는 작동한다. 미국과 서방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조차 여전히 대북 제재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지역 공화국과 북한은 외교관계를 맺고 전후복구를 논의하고 있다. 러시아의 묵인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제재는 미중패권경쟁이 더욱 심화될수록 조금씩 열릴 수 있다.
신냉전까지는 아닐지라도 미국 일극 중심 세계화시대는 막을 내리는 중이다. 불확실성, 불안정성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세계체제는 상당 기간 지속될 듯하다. 북한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던 시대, 남한이 경제발전에서 최상의 시기를 구가했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의 절대병기는 남북관계개선과 한반도평화체제구축이지 않을까.
5. 힘을 통한 평화?, 신뢰가 힘이다!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으며 힘으로써만 쟁취하고 수호할 수 있다.” 많이 들은 익숙한 이야기다. 지난 8일 김정은 위원장 시정연설의 핵심이다. 남한 또한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이 쇼였다면서 ‘말이 아닌 힘을 통한 평화’를 내세운다. 역대 남북정상회담을 가장 많이 한 문재인 전 대통령 또한 기회 있을 때마다 유능한 안보를 강조하며 ‘강한 국방력이 굳건한 평화의 토대’라고 하였다.
김정은의 언급은 적대적이며, 윤석열의 언술은 보수적이고, 문재인의 말은 진보적인가? 결론은 평화지만 상대의 위협만을 부각시키며 자기의 무장을 정당화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쟁은 곧잘 ‘닭 편이냐, 달걀 편이냐’로 변환된다. 핵무기에 선악이 있는가? 미국의 핵무기는 우리(남)를 지키고 북한 핵은 우리(남)를 파멸시킨다는 논리가 절대선은 아니다. 특히 정전협정체제에서는.
김정은은 ‘미국 일극세계로부터 다극세계로 전환’이 가속화됨을 전제로 ‘(핵)자주강국의 지위에 맞게 대외관계를 주동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북을 존중하고 우호적으로 대하는 자본주의 나라들과도 다방면적인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나가는 외교전 모색을 공언하였다. 말하자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유엔안보리에서 더 이상의 대북제재는 중국과 러시아가 지지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미중, 미러 대립은 상당 기간, 어쩌면 수십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
김정은은 “시간이 과연 누구의 편에 있습니까”라며 “우리는 바쁠 것이 하나도 없다”고 자신감을 표명하였다. 세상이 변하고 한반도 정치군사적 환경이 변해야만 핵정책이 바뀔 수 있다고 확언하였다.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한반도비핵화’가 무망하다고 판단되는 이유이다. 미국이 대북정책을 ‘비핵화’에서 ‘핵 위기관리’, 즉 핵 위협 관리와 비확산으로 중심이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제언이 꾸준히 나오는 배경이다.
대부분 전문가가 인정하듯, 혹여 북미가 관계정상화와 한반도비핵화에 합의한다 하더라도 행동 대 행동의 이행과정은 최소 수십년의 시일이 필요하다. 더 이상 북한 비핵화만을 전제로 무엇을 하겠다는 정책은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곧바로 국제전으로 비화되었듯이 한반도평화체제구축, 한반도비핵화 또한 국제적 사안이고, 국제질서는 더 이상 미국 일극체계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힘을 통한 평화’는 상대를 굴복, 또는 약화시킨다는 전략이 밑바탕에 있다. 평화는 상대와 공존을 전제로 하고 공존은 신뢰구축이 필요충분 조건이다. 신뢰구축은 상호인정과 대화, 타협과 합의사항 이행의 과정이다. 이제 첫걸음은 북핵과 미국 핵(우산)은 한반도에서 상호위협임을 인정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또한 한반도 평화와 교류협력을 위한 민간부문, 해외동포를 비롯한 한민족 전체의 노력이 절실한 때이기도 하다.

< 북한 핵무력 법제화, 상호 ‘위협’과 ‘불안’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야 >
1. 정전(停戰) 상태인 냉엄한 현실
한미동맹군과 북한군은 현재 휴전 중이다. “국제연합군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및 중국 인민지원군을 일방으로 하는” 정전협정 상태다. 쌍방 군사령관은 정전협정 효력 발생 후 “삼개월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하여 쌍방의 한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한국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 및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1954년 제네바 회담에서 종전과 평화협정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고 더 이상 회담은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현상변경이 일어났다. 결정적으로 교전 당사국인 미중, 한중이 수교하며 적대관계를 청산했고 국제연합군은 미군으로 형식, 내용 모두 대체되었다. 지금은 한미동맹군과 북한군이 정전협정의 구속을 받고 있다.
전쟁을 끝내려면 양방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했으나 69년째 종전평화협정은 체결되지 않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어느 일방의 판단으로 언제든 전쟁이 재개될 수도 있다. 종전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인정과 대화, 전쟁 재개에 대비하는 적대와 군사력 증강이 공존하는 불안정한 상황이다. 덧붙여 자국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국내외 여론전, 심리전을 열전에 버금갈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다.
2. 미국 핵우산과 북한 핵무력이 전략적 균형을 이루는 시대
북은 지난 9월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를 법화(법제화)하였다. 같은 날 김정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먼저 핵포기란, 비핵화란 없”다면서 핵전쟁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억제수단, ‘절대병기’라고 밝혔다. 또한 미국의 제재봉쇄는 자국 발전에 대한 불확신성과 위협을 증대시켜 핵을 선택한 댓가를 생각하게 하고 인민들의 불만을 유발, 야기시켜 스스로 핵을 내려놓게 하려는 기도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북의 핵무력 법제화는 2가지 원칙과 5개 조건을 명확히 하였다. 사용원칙은 최후의 수단으로써 사용, 자국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비핵국에 대한 불사용이다. 사용조건은 자국, 지도부, 중요 전략대상이 공격받거나 공격이 임박할 경우, 전쟁 주도권 장악을 위해 작전상 불가피한 경우와 자국의 파국적인 위기 초래로 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선된 경우가 그것이다. 자의적이며 선제사용도 가능할 수 있는 조건이다. 한마디로 건들면 쏜다는 것이다.
핵보유국은 통상 전략적 기밀성, 모호성을 기본으로 전술적으로 필요한 경우에 핵 사용 원칙을 드러낸다. <러-우전쟁>에서 미국과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강력한 군사, 경제적 지원을 하면서도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지원은 제외한다. 러시아가 개전 초기부터 핵사용 가능성을 경고했기 때문이다. 간접적이라도 핵보유국 사이 전쟁은 그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
북의 핵무력 법제화처럼 세세하게 핵사용 교리(독트린)를 법제화한 나라는 아직 없다. 그렇다고 다른 핵보유국과 특별히 다를 것도 없다. 미국은 핵태세검토보고서에서 “극단적 상황 속에서 미국과 동맹, 우방의 핵심 이익을 지키는 목적”을 핵사용 원칙으로 한다. 극단적 상황과 핵심이익은 자의적일 수 있다. 극단적 상황은 적성국이 핵을 사용하지 않는 중대한 공격도 배제하지 않는다. 핵심이익은 미 본토뿐 아니라 동맹과 우방의 국민이나 기반시설, 핵전력, 지휘통제, 조기경보 또는 공격자산 역량에 대한 공격을 의미한다.
적성국 공격 위협에 대한 선제타격 가능성도 마찬가지다. 북은 상대 공격이 ‘임박한 경우’를 들었다면 한미는 ‘명백한 사용징후’를 수시로 거론하였다. 이미 미국은 90년대 중반 대북 선제타격을 검토했고 트럼프 때도 정밀타격, 족집게 타격(surgical strike)을 제기하였다. 한미연합훈련 작전계획 5015는 반격이라는 이름으로 북한 주요 군사시설에 대한 타격, 최고 지도부 참수작선을 연습한다. 남한의 킬체인 또한 선제타격 개념이다.
한미와 북은 상대 공격 가능성에 대한 ‘불안’을 전제로 선제타격을 열어놓고 서로 ‘위협’하고 있다. 북은 미국의 핵무기에 대한 불안을 핵개발의 명분으로 삼았다. 상호안보위협 인식은 서로 핵무기 사전공격 가능성이라는 최고 임계치를 향해 치닫고 있는 실정이다. 재래식 국지전이라 하더라도 북한과 미국은 자의적 판단에 따라 핵사용을 할 수 있다는 원칙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반도에서 미국과 북한의 핵전력은 전략적으로 균형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상호 사전타격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핵사용 가능성에 대한 공포의 균형, 전쟁 억지력은 발휘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북한 핵무기의 미국 본토 타격능력 여하에 따라 북미 전쟁 가능성은 좌우된다. 미국은 아직 부정하고 있으나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 공언하였다. 대기권 재진입 기술, 정밀도 등을 문제삼고 있지만 대체로 북한 핵이 미국 본토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그렇다면 북미 핵전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특성상 북미 전쟁가능성은 점차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된다.
3. 한미의 압도적이며 결정적 대응은 가능한가?
지난 17일 끝난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 회의(쉬운 말로는 핵우산적용회의)는 4년 8개월 만에 재개되었다. 회의는 북한의 어떠한 핵 공격도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에 직면하게 되리라고 경고하였다. 한미연합훈련 확대와 함께 한미동맹 강화라는 포장지로 일찌감치 선전된 회의였기에 북한 핵무력 법제화에 맞추어 문투만 강화된 정도였다. 국방부 차관이 군사기지를 방문해 B-52 핵폭격기를 구경하는 퍼포먼스를 추가했을 뿐 미국의 핵우산 정책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회의 후 외교차관은 기자간담회에서 한미는 북핵 공격에 대해 핵으로 대응한다는 원칙이라면서도, ‘자동적이고 즉각적’이냐는 질문에는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을 이유로 대답을 비껴나갔다. 당연히 한미동맹군의 전시지휘권은 미국에 있다. 국지전마저 핵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면 더욱 더 미국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미국 본토 타격 가능성 뿐 아니라 남한의 군사적 모험을 통제하는 부분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분석가들은 북한 핵무기가 워싱턴 백악관 가까이 다가갈수록 미국은 서울 보다 자국 이익과 안위를 먼저 고려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러-우전쟁>의 기시감(미리 본 듯한 느낌)처럼 핵무기를 가진 국가와 전쟁을 회피할 수도 있다고 보는 이마저 있다. 북한을 선제공격한다 하더라도 북한의 보복핵공격(2차타격) 능력이 상존하는, 상호확증파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미의 압도적이고 결정적인 대북 대응은 레토릭에 가깝다. 지난 30여년 동안 경제적 세계화시대에서 익숙하게 들었던 국제표준(글로벌스탠더드)은 이제 (미국의) 가치와 규범에 따라 재편되고 있다. ‘미국우선주의’(아메리카퍼스트)가 새로운 표준이다. 국가안보가 경제적 효율성을 압도하게 만드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북한의 위협과 공격가능성에 대한 선동과 심리전이 강화될수록 남한의 자율성은 제약되고 점점 미국주도 블록경제에 종속될 것이다.
지난 3월부터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할 것이라는 미국의 심리전이 지속되고 있다. 북한의 전술핵무기가 남한을 겨냥하고 있고 선제공격 가능성까지 높아졌다고 불안을 고조시킨다. 사실 북한 핵무기는 이미 상존하고 있었지만 윤석열 정부 이후 북한 위협은 대폭 증폭되었다. 미국은 한미연합훈련을 확대하고 시시때때로 철통같은 남한 방어공약을 환기시킨다. 그 댓가로 미국은 윤석열 정부가 거의 무조건적으로 미중패권경쟁에 따른 탈중국화 블록에 가담하게 만들고 있다. 구체적으로 미국 제조업 부활(리쇼어링)을 위한 전기차, 반도체 등에 대한 남한 자본의 투자와 통제, 배제를 추진하는 중이다. 한반도 안보위협을 통해 미국체제 이익을 구현하는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북핵에 대응한 남한의 핵개발,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유럽 같은 미국의 핵공유 등을 이야기하지만 현재 미국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이다. 일본처럼 필요하다면 단시간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인정받아 훗날을 대비하자는 주장도 있다. 이는 유엔상임이사국만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핵확산금지조약(NPT) 범위 내에 있는 요구이긴 하나 비핵화 명분, 미국과 주변국 간섭, 안전성의 문제가 있다.
결론적으로 북핵에 대한 한미의 압도적이고 결정적인 대응은 북미관계 정상화에 기반한 한반도비핵화 과정을 앞당기는 방안뿐이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나 그 길만이 가장 빠른 길이다. 현실적으로 북한 핵은 이미 한반도의 상수로 진입하였기 때문이다. 정전당사국 간에 상대의 핵을 먼저 폐기하라는 요구가 가능했던 시대,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까지 인정한 유일패권시대가 저물고 있다. 현재 기술로 원자력발전소 1기 폐쇄에만도 몇 십 년이 걸린다. 한반도비핵화는 몇 년 후 당장 실현 가능하지 않고 수십 년 동안 평화와 번영을 정착시켜나가는 과정이라는 시각이 필요할 때이다.
4. 북한 핵무력은 절대병기인가?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가 전쟁에서 패한 경우는 아직 없다. 핵무기는 아직 인류사 최강무기임은 분명하다. 미국은 1945년 8월 초 히로시마, 나카사키에 핵무기를 투하하여 일본을 항복하게 만들었다. 너무 강력한 탓에 실전 사용은 딱 한 번 뿐이었지만. 이처럼 핵무기는 비핵국가에 비해 절대적 비교우위를 갖는다. 그럼에도 핵보유국이 비핵국가와 전쟁했을 경우에 핵무기를 사용한 예는 아직 없다. 다른 핵보유국의 후견, 견제가 강력하기 때문이다. 또한 핵보유국 사이 분쟁이 전면전으로 발전한 경우도 아직 없었다. 이를 억제력이라 한다.
그러나 핵을 보유했음에도 망한 나라는 있다. 알다시피 소련이며, 스스로 붕괴되었다. 지도자의 오판, 지도부의 분열, 인민대중과 군대의 분리이거나 인민대중을 비주체적으로 만든 지배체제의 한계, 다른 국가와 비교우위 상실에 따른 인민대중의 실망감 등이 복합적으로 발현된 탓이다. 핵무기가 체제 자체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소련은 해체되었으나 자본주의로 체제가 변화된 러시아가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극심한 혼란을 겪었음에도 러시아 핵무기를 미국과 서방은 해체하지 못했다. 핵무기의 또 다른 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김정은 시정연설은 핵무력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과 함께 인민대중의 지지와 일체성을 강조하였다. 수령-당-인민대중의 일심단결은 북 체제 유지의 핵심 동력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경제적 난관을 언급하며 “급선무로 나서는 먹는 문제, 소비품 문제 등의 해결”을 강조하였다. 김정은이 절대병기로 언급하고 김여정이 국체라고 표현한 북한 핵무력은 미국 등 상대에 대해서는 절대적 위력이다. 외부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안전판을 발판으로 내부 발전을 추동하는데 힘을 모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자력갱생에서 성과를 내는 경제체제 정비보강에서 성공해야만 절대병기로써 핵무력이 기능할 것이다.
북한의 핵무력 법은 매우 공세적이다. 핵 사용에 대한 원칙과 조건을 세세하고 명확하게 밝힌 까닭은 상대의 의도를 사전 봉쇄하는 효과가 목적으로 보인다. 마치 고슴도치가 가시털을 모두 세운 형세다. 지휘통제체계가 위험에 처하는 경우에는 ‘핵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된다. 핵 사용조건은 ‘핵 및 비핵 공격’, ‘치명적인 군사적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하였다고 판단하였을 경우 뿐 아니라 ‘전쟁의 주도권 장악을 위한 작전상 필요’가 제기되는 경우에까지 확대하였다. 특히 ‘파국적인 위기가 초래하는 불가피한 상황’은 해상봉쇄 등 뿐 아니라 강력한 대북제재까지 포함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북의 핵무력 법은 다분히 수세적이며 정세대응 성격을 갖는다. 북은 김정은 집권 첫해인 2012년 개정헌법 서문에 김정일 위원장의 업적을 추가하면서 ‘핵보유국’으로 전변시켰다고 명시하였다. 2006년과 2009년, 2차례 핵시험을 마친 상태였다. 2013년 2월에 3차 핵시험을 하고 4월에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고히 할데 대한 법을 채택하였다. 미국의 적대시정책과 핵위협에 대처하여 부득이하게 갖추게 된 정당한 방위수단임을 1조에 천명하였다. 그러나 2017년 11월 말에야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였다.
북은 2018년 남북, 북미관계 개선과 한반도비핵화에 나섰고 아시다시피 미국의 과욕으로 무산되었다. 북은 2019년 말 정면돌파전을 선언하였으나 코로나대유행으로 국경을 폐쇄하였다. 문재인 정부와 갈등하면서도 친서를 주고 받았으나 북은 미중패권경쟁이 심화되자 2021년 ‘신냉전’ 시대라는 인식을 보였다. 2022년 2월 <러-우전쟁>에 이어 3월 남한에 대북선제타격을 주장하는 정부가 들어섰다. 김정은은 4월 25일 열병식에서 핵무력에 대하여 전쟁억지와 함께 근본이익이 침탈당하는 경우로써 다음 사명을 언급하였다. 핵 사용 조건을 넓힌 것이다. 그리고 8월 말에 진행한 한미연합훈련을 북침연습으로 규정하며 비난하였고 9월 8일 핵무력을 법제화하였다. 선제타격 가능성까지 명시하였다.
김정은은 시정연설에서 ‘잘못된 선택으로 비참한 말로’를 당한 20세기, 21세기 수많은 역사의 사건을 잘 알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미국의 정권붕괴 의도를 강조하며 주변의 군사적 정세가 장기성을 띠며 악화되고 있는 정세발전 추이 등, 중대한 시기에 핵무력 정책을 법(제)화하였다고 밝혔다. 중대한 시기는 ‘신냉전’으로 표현된 세계정세 변화다. 북한이 핵무기 사용에 대한 전략적 명확성을 밝힌 까닭은 미국만이 아니라 중, 러에 대한 신호일 수 있다. 반쪽이라 할지라도 실질적 핵보유국 인정을 향한 발걸음을 떼기 위한 시도 중 하나가 아닐까.
NPT체제에서 핵보유국은 유엔 안보리상임이사국 다섯 나라다. 그 외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은 실질적 핵보유국이다.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상태는 핵을 묵인하고 정치외교, 무역 등에서 제재를 가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미국 일극체계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제재에 동참하였고 아직 유엔제재는 작동한다. 미국과 서방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조차 여전히 대북 제재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지역 공화국과 북한은 외교관계를 맺고 전후복구를 논의하고 있다. 러시아의 묵인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제재는 미중패권경쟁이 더욱 심화될수록 조금씩 열릴 수 있다.
신냉전까지는 아닐지라도 미국 일극 중심 세계화시대는 막을 내리는 중이다. 불확실성, 불안정성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세계체제는 상당 기간 지속될 듯하다. 북한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던 시대, 남한이 경제발전에서 최상의 시기를 구가했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의 절대병기는 남북관계개선과 한반도평화체제구축이지 않을까.
5. 힘을 통한 평화?, 신뢰가 힘이다!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으며 힘으로써만 쟁취하고 수호할 수 있다.” 많이 들은 익숙한 이야기다. 지난 8일 김정은 위원장 시정연설의 핵심이다. 남한 또한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이 쇼였다면서 ‘말이 아닌 힘을 통한 평화’를 내세운다. 역대 남북정상회담을 가장 많이 한 문재인 전 대통령 또한 기회 있을 때마다 유능한 안보를 강조하며 ‘강한 국방력이 굳건한 평화의 토대’라고 하였다.
김정은의 언급은 적대적이며, 윤석열의 언술은 보수적이고, 문재인의 말은 진보적인가? 결론은 평화지만 상대의 위협만을 부각시키며 자기의 무장을 정당화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쟁은 곧잘 ‘닭 편이냐, 달걀 편이냐’로 변환된다. 핵무기에 선악이 있는가? 미국의 핵무기는 우리(남)를 지키고 북한 핵은 우리(남)를 파멸시킨다는 논리가 절대선은 아니다. 특히 정전협정체제에서는.
김정은은 ‘미국 일극세계로부터 다극세계로 전환’이 가속화됨을 전제로 ‘(핵)자주강국의 지위에 맞게 대외관계를 주동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북을 존중하고 우호적으로 대하는 자본주의 나라들과도 다방면적인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나가는 외교전 모색을 공언하였다. 말하자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유엔안보리에서 더 이상의 대북제재는 중국과 러시아가 지지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미중, 미러 대립은 상당 기간, 어쩌면 수십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
김정은은 “시간이 과연 누구의 편에 있습니까”라며 “우리는 바쁠 것이 하나도 없다”고 자신감을 표명하였다. 세상이 변하고 한반도 정치군사적 환경이 변해야만 핵정책이 바뀔 수 있다고 확언하였다.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한반도비핵화’가 무망하다고 판단되는 이유이다. 미국이 대북정책을 ‘비핵화’에서 ‘핵 위기관리’, 즉 핵 위협 관리와 비확산으로 중심이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제언이 꾸준히 나오는 배경이다.
대부분 전문가가 인정하듯, 혹여 북미가 관계정상화와 한반도비핵화에 합의한다 하더라도 행동 대 행동의 이행과정은 최소 수십년의 시일이 필요하다. 더 이상 북한 비핵화만을 전제로 무엇을 하겠다는 정책은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곧바로 국제전으로 비화되었듯이 한반도평화체제구축, 한반도비핵화 또한 국제적 사안이고, 국제질서는 더 이상 미국 일극체계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힘을 통한 평화’는 상대를 굴복, 또는 약화시킨다는 전략이 밑바탕에 있다. 평화는 상대와 공존을 전제로 하고 공존은 신뢰구축이 필요충분 조건이다. 신뢰구축은 상호인정과 대화, 타협과 합의사항 이행의 과정이다. 이제 첫걸음은 북핵과 미국 핵(우산)은 한반도에서 상호위협임을 인정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또한 한반도 평화와 교류협력을 위한 민간부문, 해외동포를 비롯한 한민족 전체의 노력이 절실한 때이기도 하다.